“필리핀 바닷가에 가면 어부들이 해먹에서 낮잠을 자고 있어. 왜 하루 종일 낮잠만 자냐고 물어보면 어부가 되물어. 그럼 잠 안 자고 뭘 합니까? 이 사람들아, 나가서 물고기도 잡고 돈도 벌고 그래야지. 그럼 어부가 또 물어. 고기 잡고 돈 벌어서요? 좋은 집도 짓고 애들도 교육시키고 그리고 편안히 쉬어야지. 그럼 어부가 웃으면서 뭐라는지 알아? 지금 쉬고 있잖아요? 그렇게 말하니까 할 말 없더라고. 참 팔자 편한 놈들이야. 가난하게 사는 건 다 이유가 있어? 안 그래?”
글쎄. 그렇지만 나는, 하루 종일 굴신도 제대로 못하는 좁은 매장에서 재고관리에, 손님 상대에, 물품 주문에, 그리고 장부 정리까지, 온갖 격무에 시달리는 서울의 편의점 점주와 느긋하게 낮잠을 자다가 잠깐 고기를 잡는 필리핀 어부 중, 누구의 인생이 더 나은 것인지 쉽게 가늠할 수 없었다.
-김영하 <퀴즈쇼>
1/
휴가씨즌으로 프로젝트 중간에 잠시 서울로 복귀한 U와의 시간.
U가 말레이지아에서 만난 택시 운전기사 얘기를 해주었다.
비행시간까지 12시간이나 남았지만, 피치못할(!) 사정으로
공항으로 가는 택시안에서 운전기사와 급 죽이 맞아서
낚시터로 향했다는. 낚시 후 택시기사 집까지 방문했다는.
대개의 경우 해외에서 가이드가 아니더라도 저런 상황에서는
식사나 경비 일체를 여행자가 지불하는게 통상적인데,
말레이시아 택시기사는 L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줬다고 한다.
내가 사주겠다는 U의 말에, 택시기사는 오늘 하루 당신이
나를 샀지만, 낚시는 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지금 이시간에 낚시를 하게 해줘서 당신에게 너무 고맙다.
그래서 이렇게라도 대접하고 싶다....
그리고 택시기사의 엄마는 아들이 잡아온 고기라고
식사시간 내내 자랑스럽게 몇번씩 얘기했다고 한다.
U의 말에 의하면 말레이시아에서 운전기사 중 택시기사는
하층에 속한다고 한다. 상급의 운전기사는 관광버스라고 한다.
관광버스 하고 싶지 않냐는 U의 말에 택시기사는 그리
부럽지 않다는 식의 얘기를 했다고 하는데....
-아,,, 술이 왠수로다. 생각이 잘 안나는도다. (ㅜ,.ㅜ)-
물질적으로야 넉넉치 못하겠지만,
마음은 한없이 여유로운 사람이라고
어제도 얘기도중 안부문자를 보내는 등
U는 그 택시기사와 연락을 주고 받는다고 한다.
2/
캄보디아는 최빈민국중의 하나이지만, 국민들의
행복지수 조사에서는 항상 상위권에 든다고 한다.
처음 캄보디아를 여행할때는 그런가보다 했다.
그때 내 카메라에는 캄보디아 아이들의 미소만
들어왔었다. 유적지에서 원딸라 하며 손을 내미는
아이들에게서도, 끝까지 쫓아오며 사지 않아도 되니
팔찌하나 내손에 쥐어주던 아이에게서도, 씨엠립에서
보트를 타고 유유히 흘러다니던 아이들에게서도.
그런데, 두번째 찾아갔던 캄보디아에서는 내 카메라에
들어온 한 아이의 표정은 그동안 보아왔던 다른 아이들과는
너무나 다른 얼굴이었다. 그 아이의 표정을 난 잊을수가 없다.
그래서 난 캄보디아 아이들의 미소가 나 지금 행복해요
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원딸라, 원딸라, 천원, 천원을 외치는
아이들의 얼굴은 당연히 그 원딸라, 천원을 위해서일뿐이라고.
3/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부르짖으면서도
탄수화물 섭취는 내켜하지 않는 서울의 30대 여성과
아들이 잡은 물고기 한마리라도 자랑하고픈 엄마와
도란도란 식사를 하는 말레이시아 택시기사 중,
누구의 인생이 더 나은 것인지는 쉽.게. 가늠할 수가 있다.